요즘 영화 오펜하이머의 열기가 대단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12번째 작품이라는 사실 하나로도 사람들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순제작비가 1억 달러인데, 개봉 34일 만에 월드 박스오피스 1위, 매출 7억 2천5백만 달러를 돌파했다. 국내에서는 개봉 10일 만에 관객 수가 220만을 넘어섰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전기를 다룬 영화다. 그는 2차대전 때 “맨하탄 프로젝트”의 연구책임자로 원자폭탄의 개발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의 별명은 ‘원자폭탄의 아버지’이다. 그러나 핵무기 투하의 끔찍한 결과에 그는 괴로워했다. 전쟁 직후 그는 원자폭탄의 수천 배 살상력을 지닌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했다. 그러다가 결국 정권의 미움을 샀다.
그는 자기 주변의 인물들 때문에 공산주의자라는 의심을 받았다. 결국 오펜하이머는 1953년 12월 비밀정보접근 권한을 빼앗겼다. 이후 '오펜하이머 청문회'로 보안 접근 권한을 빼앗기게 된다.
이 영화의 원작은 그의 전기를 다룬 책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 몰래 인간에게 불을 전해 줬다가 제우스의 노여움을 샀다. 그래서 코카서스 산 바위에 쇠사슬로 묶인 채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받는다. 2차 대전을 일찍 끝내기 위해 원자폭탄을 개발했으나, 전쟁 후 그로 인해 고통받는 오펜하이머를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하여 붙인 제목이다. 이 책은 2005년에 나왔고, 2010년에 한국어판도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 영화 덕분에 이 책도 대박이 났다.
이 영화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엔리코 페르미, '에드워드 텔러, 리처드 파인만 등. 그중에는 프랭크 오펜하이머도 있다. 그는 로버트 오펜하이머보다 8살 아래 동생이다. 13살 때부터 형처럼 물리학자가 되겠다고 생각한다. 이론물리학자인 형은 동생이 물리학자가 되는 것을 신중히 생각하라고 만류한다. 하지만 동생은 결국 물리학을 전공한다. 손재주와 감각이 뛰어난 동생은 이론물리학 보다는 실험물리학에 훨씬 재주가 있었다. 그는 형처럼 영국의 케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에서도 공부했고, 이태리에서도 공부했다. 칼텍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실험물리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젊은 시절 프랭크 오펜하이머(Frank Oppenheimer)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양복사업으로 거부가 되었다. 어머니는 화가였다.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 앞 아파트는 한 층이 아파트 하나였다. 가정부가 셋이나 되었다. 집에는 고흐, 르누아르, 피카소 같은 화가들의 작품들이 걸려있었다. 그는 형을 따라서 물리학자가 되었고 원자폭탄을 연구했다. 불행히도 로버트와 프랭크 오펜하이머 형제는 둘 다 공산주의 혐의로 경력이 단절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길은 서로 달랐다. 형 로버트는 고등과학원 원장으로 지내면서 학술활동을 했다. 동생 프랭크는 콜로라도 목장에서 10년간의 은둔 생활을 마치고 자신의 힘으로 일어섰다. 그는 익스플로라토리움이라는 세계 최고의 핸즈온(Hands0on)과학관을 설립하고 전 세계 과학교육의 혁명을 일으켰다. 익스플로라토리움은 놀이, 실험, 기쁨과 경이로움을 장려하면서 예술과 과학을 결합한 "인간 인식의 박물관"이다.
“1969년 프랭크 오펜하이머가 만든 샌프란시스코의 익스플로라토리움은 과학 박물관에 대한 모든 통념을 뒤집었다. 컬렉션이 없었다. 진열장도 없었다. 물건이 특별하다는 표식도 없었다. 그것들은 부서질 것처럼 보였고, 작업장은 박물관 바닥 바로 옆에 있었다. 방문객들은 이 진자가 흔들리고 공이 굴러가게 자기가 굴렸다.”
전 세계 과학 센터의 80%가 익스프로라토리움에서 개발한 전시물을 사용한다. 1982년 이래로 전 세계 박물관, 대학, 기관에 2,500개 이상의 전시품이 설치되었다. 이 과학관은 40,000페이지 이상의 원본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그 시작이 바로 동생 프랭크 오펜하이머의 사고에서 시작되었다. 참 과학적으로 뛰어난 형제들이다. <끝> 권기균(과학관과문화 대표, 공학박사)
출처: [머니투데이 청계광장] https://m.mt.co.kr/renew/view_amp.html?no=2023082714541131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