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소니언자연사박물관 2층에는 <지질, 보석 및 광물 전시관(Hall of Geology, Gems, and Minerals)>이 있다. 2층에서는 이곳이 가장 규모가 크다. 여기서는 정말 다양한 크기와 모양, 색상의 보석과 광물 표본들을 즐길 수 있다. 전시실은 호프다이아몬드 갤러리, 보석 갤러리, 광물 갤러리, 암석 갤러리, 지질학 갤러리 등이 있다.
그중 최고 인기는 호프 다이아몬드다. 매년 600에서 800만 명이 보러온다.이것은 45.2캐럿짜리 블루 다이아몬드다. 세계의 다이아몬드 보석상 중 브랜드 파워 1위를 자랑하는 해리 윈스턴이 1958년 스미소니언에 기증한 것이다.
호프 다이아몬드가 정확히 언제 어디서 처음 발견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1668년 프랑스의 보석상 장 밥티스트 태버니어가 112₃/₁₆캐럿(* 태버니어의 서류에 112₃/₁₆캐럿의 푸른 다이아몬드를인도에서 가져왔다.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그걸 샀다. 루이 14세는 1673년 그 보석을 하트 모양으로 깎았다. 크기는 67⅛캐럿으로 줄었지만, 빛나는 광채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때부터 이 보석의 별명은 ‘프렌치 블루’가 되었다.
(* 루이 14세는 자기가 나라를 통치하는 것은 반짝이는 빛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베르사유 궁전을 지을 때도, 궁전 안의 모든 장식을반짝이는 유리로 만들고, 빛나는 샹들리에를 많이 썼다. 그래야 자신의 통치가 빛나고 잘 된다고 생각했다. 보석도 마찬가지였다. 큰 보석보다는 찬란하게 반짝이는 보석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크기가 줄어도 다이아몬드를 반짝이도록 커팅하게 했다.-삭제 가능)
1962년 5월, 1달 동안 루브르박물관에서 “프랑스 보석 10세기”라는 전시회가 열렸다. 그해 1월 26일에 루브르박물관 책임자가 스미소니언박물관 측에 편지를 썼다. ‘호프 다이아몬드’를 이 전시회에 전시할 수 있게 5월 한 달 동안만 빌려달라고. 그러나 스미소니언의 ‘카마이클’회장은 루브르박물관 측에 완곡하게 거절 답장을 보내도록 했다.
루브르박물관은 다시 부탁했다. 호프 다이아몬드를 빌려주면, 루브르박물관의 중요한 미술작품들을 스미소니언에 빌려주겠다는 제안도 했다. 외교적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도 요청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스미소니언 회장은 이번에도 거절 답장을 쓰라고 했다.
그러자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 문화부 장관이 직접 나섰다. 그는 1961년 5월에 ’미국 케네디 대통령 부부를 만났다. 그때 대통령 부인 ‘재클린’여사와 두 나라의 문화적 협력을 돈독히 하자는 얘기를 나눴다. 그걸 명분으로 백악관에 요청했다. 두 나라의 문화적 협력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호프 다이아몬드’를 루브르박물관에서 전시하게 도와 달라고. 결국 루브르박물관에서 ‘호프 다이아몬드’가 전시되었다.
루부르박물관의 전시회는 잘 끝났다. 이번엔 재클린 여사가 ‘앙드레 말로’ 장관에게 요청했다.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미국에서 전시하게 해달라고. 그러자 프랑스에서 난리가 났다. 1911년 8월22일 도난당했다가 2년3개월 만에 다시 루브르박물관으로 돌아온 이래, 모나리자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외부로 나간 적이 없었다. 루브르박물관 큐레이터들은 만약 ‘모나리자’를 미국에 빌려주면, 전원이 사표를 쓰겠다고 했다. ‘르 피가로’ 신문은 반대하는 사설까지 실었다. 하지만 결국 앙드레 말로 장관은 빌려주기로 했다. 50년 만에 처음으로 ‘모나리자’의 외국 반출을 허락한 것이죠.
이 일은 프랑스 정부가 미국 대통령실에 직접 대출해주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보험사에서 평가한 ‘모나리자’의 가치는 100만 달러(2021년으로 환산하면 8억7천만 달러)였다. 지금 한화로는 1조원이 넘다. 철통같은 경호가 이뤄졌다. ‘모나리자’는 여객선으로 미국 해안경비대의 호송을 받으며 뉴욕 항구로 들어왔다. 그림이 워싱턴으로 가는 동안, 경유도로의 모든 차량들은 정지해서 기다렸다. ‘모나리자’의 차량 행렬은 내내 빨간 신호등을 통과했다.
드디어 1963년 1월8일~2월3일 미국국립미술관에서 ‘모나리자’ 전시회가 열렸다. 딱 ‘모나리자’ 한 점만 가지고. 전시회 첫날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 장관도 참석했다. 그날은 대통령과 대법관, 국회의원, 외교관들만 관람했다. 전시 기간 내내, 미국 해병대가 경비를 맡았다. 또 그림 옆에는 항상 두 명의 해병대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관람 시간을 매일 4시간씩 연장했다. 그러고도 한 줄로 서서 1인 당 4초씩만 모나리자를 볼 수 있었다.
전시 기간 중에는 ‘호프 다이아몬드’도 ‘모나리자’ 옆에 같이 전시되었다. 대신 그 기간 중에 자연사박물관에는 복제품이 전시되었다. <끝>
출처: [청계광장]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전시회가 미국에서 열렸던 사연 - 머니투데이 (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