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기균의 과학이야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위대한 발명] 핵무기의 개발과 사용 규제를 주장 - <소년조선일보 2015.04.20. 게재>
과학계의 거장 닐스 보어
 
과학관과 문화   기사입력  2015/06/23 [02:25]

―과학계의 거장 닐스 보어

아인슈타인은 20세기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한 명이에요. 독일의 과학자 오토 한이 우라늄 핵분열 실험에 성공한 이듬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어요. 그러자 아인슈타인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우라늄을 이용한 원자폭탄 개발에 착수할 것을 권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어요. 그 결과, 미국에서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됐죠.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는 13만명의 인력이 투입됐어요. 1945년 7월 16일 원자폭탄이 개발됐어요. 그리고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우라늄235로 만든 첫 원자폭탄이 투하됐고 7만명이 즉사했어요. 3일 후에는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6만명이 죽었어요. 이 모습을 보면서 아인슈타인은 죄책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대량살상무기 반대운동을 펼치기 시작했죠.

	과학계의 거장 닐스 보어.
◇아인슈타인과 쌍벽인 과학자, 닐스 보어

아인슈타인과 쌍벽을 이루는 20세기 과학자가 있어요. 덴마크의 닐스 보어예요. 닐스 보어는 덴마크 돈 500크로네 지폐에 초상화가 인쇄돼 있을 만큼 유명해요.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는 자연현상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랐어요. 아인슈타인은 원인에 따라 결과가 나온다고 주장했어요. 닐스 보어는 우연에 근거해 어떤 현상이 일어난다고 강조했죠.

그런데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과정을 보면 닐스 보어의 의견이 더 맞다고 생각돼요. 원래 미군이 두 번째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려던 장소는 나가사키가 아니라 군사용 물자를 생산하던 고쿠라 지역이었어요. 1945년 8월 9일, 폭격기 세대가 일본으로 향했어요. 그런데 그중 한 대가 집합 장소에 제때 도착하지 않았고, 두 대만 고쿠라 근처에 가게 됐어요. 시야 확보의 어려움으로 30분이 지체되면서 폭격기의 연료가 부족해졌어요. 미군은 할 수 없이 두 번째 목표였던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죠.

◇원자폭탄 개발보다 세계평화를 걱정해

1943년 12월 닐스 보어는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아들 오게 보어와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이 먼저 원자폭탄을 제작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지요. 그러나 닐스 보어는 실질적 개발 작업보다는 원자폭탄 이후의 위험을 더 걱정했어요. 그래서 1944년 7월 3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났어요. 그 자리에서 그는 핵무기의 개발과 사용을 규제하는 국제위원회를 만들고, 핵전쟁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소련 간첩이었던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직원에 의해 소련이 핵무기를 개발했어요. 그제야 닐스 모어의 주장대로 국제 원자력 기관 설립이 논의됐죠. 그로부터 60년 이상이 지났지만, 아직도 세계는 핵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핵무기의 위험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우리 함께 찾아봐야겠어요.
  • Copyright ⓒ 소년조선일보 & Chosun.com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5/06/23 [02:25]   ⓒ 과학관과 문화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닐스 보어 관련기사목록